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가수 김현철

반응형

 가수가 꿈이었습니다. 지금도 가수를 꿈꾸고 있습니다. 노래하는 사람, 연예인. 뭔가 화려해 보이고, 자유로울 것 같았습니다. 평범한 삶보다는 더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뭘 좀 아느냐? 그건 또 아닙니다. 살아온 삶이 얼마나 된다고, 알면 뭘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냥 꼴값 떠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겉으로는 철든 척, 평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속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직도 가수를 꿈꾸고 있습니다. 문제는 꿈만 꾸고 있습니다.     

 

 

 가수라는 꿈을 언제부터 키웠느냐.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전 연예인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잘 생기고, 예쁘고, 노래 잘하고, 웃기기도 하고, 연기도 잘하는 연예인들 좋아합니다. 그런데 특정 연예인의 팬을 자처할 정도는 안 된다는 겁니다. 평범한 수준의 관심일 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연예인에 대한 관심은 딱 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한 번, 딱 한 명. 연예인을 제대로 좋아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좋아합니다만 같이 나이 들어가는 처지라 ‘잘 살고 있겠지.’ 정도의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그 연예인이 누구냐면 바로 가수 ‘김현철’입니다. 중학교 시절에 우연한 기회에 김현철의 대표곡인 ‘달의 몰락’을 들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가사의 노래는 아니었습니다. 발매 일을 찾아보니 제가 중2 때 발매된 노래입니다. 초등 딱지를 뗀 지 2년째에 접어드는 학생이 노래 가사를 이해하면 얼마나 이해했겠습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노래가 귀에 들어왔습니다. 곧잘 따라 불렀습니다. 지금도 귀에 생생히 들리는 듯합니다. 그 특유의 전주 띠리리링~.     

 

 

 태어나 처음 가수의 앨범을 샀습니다. 테이프를 샀습니다. 지금은 없는 테이프를. 그리고 앨범이 발매될 때마다 샀습니다. 그전에 나온 노래 중에 ‘춘천 가는 기차’도 유명하고, 이후로 나온 노래들 중에 유명한 노래가 정말 많습니다. ‘일생을’, ‘왜 그래?’,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등등. 지금 막 생각나는 히트곡이 이 정도입니다. 그리고 알기로는 가수 ‘이소라’를 발굴한 프로듀서이기도 합니다. 자연스레 이소라도 좋아하게 됐습니다.     

 

 

 덕분에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시티 팝’, ‘재즈’, ‘보사노바’ 등의 장르도 즐겨 들었습니다. 지금도 가장 즐겨 듣는 장르가 재즈, 보사노바 등입니다. 만약에 정말 가수가 돼서 유명해져 인터뷰할 기회가 왔다면, 영향을 받았거나 롤 모델이 김현철이라고 당당하게 말했을 겁니다. 그리고 김현철을 만나면 선배님이라고 인사드리며 ‘제가 선배님 덕에 가수가 됐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정말 즐거운 상상입니다.     

 

 

 김현철의 노래와 음악을 좋아하고, 사람 자체를 좋아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저런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가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시점은 중학교 시절일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건 노래를 못했습니다. 아빠가 노래를 꽤 해서 닮았다면 역시 조금 할 텐데, 엄마를 닮았는지 그저 그랬습니다. 가수가 되고 싶은데 노래를 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렇게 김현철을 좋아하며 노래를 들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고2 시절 어느 날, 옆의 여학교와 미팅을 하게 됐습니다. 학생들이 갈 곳이라 봐야 몇 군데 없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노래방이었습니다. 다 같이 노래방을 갔는데 웬걸 다들 노래를 잘하는 겁니다. 같이 간 녀석들이 구애하는 수컷들처럼 한껏 노래실력을 뽐냈습니다. 전 구석에 박혀 박수만 쳐 댔습니다. 아…. 그때의 그 암담한 기분이란. 그 이후로 다짐했습니다. ‘그래! 내 꿈도 가순데, 노래를 연습해 보자.’ 그때부터 비 맞은 중처럼 틈만 나면 노래를 불렀습니다. 흥얼흥얼~. 친구들한테 욕도 많이 들어 먹었습니다. 그만 좀 부르라고. 그래도 했습니다. 꿈이 가수고, 무엇보다 다음 미팅 때는 반드시 노래를 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구석에 처 박혀 박수만 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순수한 동기와 피나는 노력(?)이 결실을 본 건지, 어느 순간부터 주변으로부터 노래 좀 한다는 평을 듣게 됐습니다. 그래 봐야 대한민국 어느 동네에나 있는 노래방 가수 수준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꿈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간 느낌이랄까. 그리고 상상을 했습니다. 어두운 관중석, 수만의 관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노래하는 나, 캬하~. 지금 상상해도 달달합니다.     

 더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실용음악학원을 다니지도 않았고, 관련 학과를 가지도 않았습니다.(정확히는 그런 학원이나 대학교의 학과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혼자서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연습이라기 보단 습관이 됐습니다.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입은 시종 쉬질 않으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한 번, 의미 있는 도전을 해 봤습니다. 정말 미미한 도전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도전은 맞습니다. 지금이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오디션을 보는 시대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전화로 보는 오디션이란 걸 보게 됐습니다. 방식은 간단합니다. 안내된 번호로 전화를 해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노래는 녹음이 됩니다. 그럼 그쪽에서 듣고 결과를 통보해 줍니다. 불합격이었습니다. 평이 이랬습니다. 20년도 전의 일입니다만 기억이 납니다. ‘노래를 못 하는 건 아닌데, 목소리에 개성이 없습니다.’ 딱 동네 노래방 가수 수준이 맞았던 겁니다. 많이 실망하지는 않았습니다. 낯간지럽지만 처음 해 본 오디션이었고, 앞으로도 기회는 많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오디션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이렇다 할 도전은 해 보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습관처럼 노래를 부르고, 나름 연습이랍시고 했는데 실질적인 도전이 없으니 결과가 나올 리 만무했습니다. 계속해서 동네 노래방 가수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지인들은 노래를 잘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고 해 준 것 같기도 합니다.     

 

 

 군 복무 시절에 연대 장기자랑에서 아쉽게 2등을 한 기억도 있습니다. 전 이소라의 ‘난 행복해’를 불렀고, (가성을 정말 잘 냈습니다.) 1등 한 친구는 이승철의 ‘말리꽃’을 불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친구가 1등을 했고, 제가 2등을 했기에 두 명이 단연 돋보였습니다. 경쟁 상대였지만 정말 잘 불렀습니다. 그런데 관중 분위기는 제가 더 좋았습니다.     

 

 

 남자가 여자 노래를! 그것도 이소라의 난 행복해를 부르다니! 노래를 선곡하고 부르려고 하는데 처음엔 관중의 분위기가 어수선했습니다. ‘저 놈 저거 뭐야? 웃기려고 저러나.’ 이런 분위기였습니다. 당시에 ‘노래 못하는 가수’라는 독특한 콘셉트의 가수가 활동했었습니다. 그래서 다 그런 느낌으로 웃기려고 나왔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1절이 끝났을 때 관객들의 눈은 놀라움과 경외로 가득했습니다. 노래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그 열화와 같은 박수와 함성은 지금도 기억합니다. 말리꽃을 먼저 부른 친구도 놀라움의 눈으로 박수를 쳤습니다. 그런데 뭐 결과는 2등을 했습니다. 대대장님의 아쉽다는 위로도 기억이 납니다.     

 

 

 또 한 번의 기분 좋은 기억은 꽤 최근의 일입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축제에서 각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나와 장기자랑을 했는데 지역 대표로 나갔습니다. 혼자 나간 건 아닙니다. 3명 그러니까 가수라고 하면 트리오로 나갔습니다. 여하튼 관중은 3천 명이 넘었습니다. 크~. 그때의 설렘과 긴장이란, 어떻게 보면 가수를 꿈꾸던 어린 시절의 로망이 실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두운 관중석, 수만까지는 아니지만 수천의 관중, 그리고 혼자는 아니었지만 비치는 스포트라이트….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닌데, 말 그대로 꿈만 같은 기억입니다. 달달함이 치사량을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막연하게 가수에 대한 꿈을 꾸고 있습니다. 유튜브를 활용해 보려 하는데 ‘나이가 들어서’라는 진부한 핑계 뒤에 숨어 아직 마음만 먹고 있습니다. 더욱이 가수로서의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기에 성대 관리라는 것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목이 예전만 못해 선뜻 나서질 못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진짜 꿈은 가수입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핑계 뒤에 숨어 있지만 아직도 저의 최고의 꿈은 가수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