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내 글 속에 ‘가장’까지는 아니지만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불안’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내 속에 있는 것들을 털어내기 위함이었다. 속에 있는 것들을 털어냄으로써 무엇들이 들어 있는지 알고 싶은 욕망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머리가 상자라면 뚜껑을 열면 될 것이고, 가슴이 서랍이라면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속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머리는 상자가 아니고 가슴 역시 서랍이 아니기에 그 속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녹록지는 않다. 한약재를 오랜 시간 동안 고아서 짜내듯이 쥐어 짜내야 겨우 뭐가 들었는지, 그나마도 알까 말까 한 수준이다. 때로는 답답한 마음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헤집다 게워 내는 경우도 있고, 더럽게 싸지르는 경우도 있다.
글 쓰는 건 고상한 작업인 줄 알았는데 완벽하게 속았다. 하기야 누굴 탓하랴. 속은 내가 바보지. 고상해 보이는 결과만 보고 그 속내의 고통은 파악하지 못하고 덤벼든 바보 같고 성급한 내 의지를 탓하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지 모르겠다.
쥐어 짜내고, 게워 내고, 싸지르는 과정을 통해 속을 털어 내면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로 무언가 거창하고 의미 있는 것들이 나오길 바랐었다. 그런데 많이 나온 단어가 ‘불안’이라니…. 일순 이쯤에서 모든 걸 뒤집어엎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행복, 기쁨, 목표, 도전 뭐 이런 멋들어진 것들도 많은데 불안이라니 뭔가 한참 잘못된 거 같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득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표현이 생각난다. 오죽 좋으면 개똥밭을 굴러먹는데도 이승이 낫다니…. 한 편으론 기가 찰 노릇이다. 하기야 그 정도의 삶에 대한 욕망이 없었다면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이란 종은 벌써 도태됐으리라.
대부분의 인간은 이상을 꿈꾸고 산다. 꿈을 먹고 산다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이상이라는 게 참 웃기는 놈이다. 쉽게 가 닿을 수 없는 곳에 보통 있기 마련이다. 땅을 현실이라고 해 보면 하늘 정도가 이상이 될 수 있겠다. 무슨 특혜를 받았는지 날 것이 아닌 인간이 날 수 있는 능력을 실현해 냈으니 보다 가능성이 낮은 우주 정도를 이상으로 삼아야 되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우리는 그런 하늘을, 우주를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바라본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평생 가 닿기도 힘든 것들을 이상이라는 허상에 빠져 마약처럼 탐닉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가 닿을 수 없는 허상 같은 이상을 바라보려면 현실에 발을 딛고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똥이 뿌려져 있는 어찌 보면 더러운 현실에 발을 딛고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럽기도 하거니와 불안하다. 바닥 상황은 생각지 못하고 높디높은 이상만 바라보다 넘어지기 일쑤니 말이다. 발 정도야 개똥밭을 밟고 서 있는 건 참을 수 있다지만 개똥밭을 굴러 온 몸에 개똥을 처바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인간을 불안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 인간이 날아올랐나 보다. 그 불안, 이상만 바라보다 넘어질 수 있다는 그 불안을 이겨내려 하다 보니 날 것도 아닌 주제에 감히 날아올랐나 보다.
이렇게 보니 내 속에 있던 불안을 끄집어낸 게 오히려 잘 됐다 싶은 생각이 든다. 이상을 바라보는 목표의식보다, 이상을 이루어 낸 뒤의 행복보다, 진정으로 나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건 개똥밭을 구르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아닌가 말이다. 글을 잘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 같다.
글을 쓰기 시작한 목적과 이유가 내 속을 털어 내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채우기 위함이기도 했는데, 이거 어쩌다 보니 괜찮은 답을 뽑아낸 것 같다.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는 격이라고 딱 그 짝이다. 소가 뒷걸음치다 쥐를 잡아 줬으니, 쇠뿔을 단김에 빼는 의지는 양심상 찔려서 안 되겠고, 무딘 펜이지만 뽑아서 썩은 무 같은 글이라도 계속 써 나가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