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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달걀 같은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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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굳이 의미를 찾으려 하는가?

 인생은 욕망이지, 의미가 아니다.”

 -찰리 채플린     

 

 달걀은 맛있다. 그냥 먹어도 맛있고, (난 잘 모르겠다. 날달걀을 먹어 본 적도 없고 먹고 싶지도 않다. 비린내, 맛 등을 싫어한다.) 삶은 달걀도 맛있다. 이제 막 삶은 달걀을 그냥 먹어도 맛있고, 소금을 찍어 먹어도 맛있다. 비슷한 형태로 요리한 구운 달걀, 훈제 달걀도 맛있다. 흰자 부분의 식감이 조금 더 꼬들하다고 해야 되나? 그리고 굽거나 훈제를 할 경우 간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삶은 달걀보다 조금 더 짭조름한 것 같아서 소금 없이도 간간하다. 달걀찜도 맛있고, 달걀말이도 맛있다. 달걀찜이나 달걀말이를 하면 몇 개의 달걀을 한 번에 먹을 수도 있다. 빼먹을 뻔했는데 달걀만으로도 장조림을 하기도 하고 고기와 함께 장조림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달걀프라이를 제일 좋아한다. 달걀을 주, 부재료로 하는 요리는 무궁무진하다. 달걀 요리들만 나열해도 책을 12권도 더 쓸 수 있을 정도다.     

 

 

 달걀 요리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이쯤에서 전문가에게 맡기고 내가 할 이야기는 사실 달걀 이야기가 아니다. 생각해 보자. 우리는 달걀을 이용해 다양한 요리방법을 통해 정말 많은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이때 어떤 의미를 찾기 위해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달걀을 먹는 건 아닐 것이다. 그냥 먹고 싶어서, 보다 맛있게 먹고 싶다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생존과도 연결된 부분이다. 물론 달걀이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물과 산소 정도 일 것이고, 나머지는 부수적인 요소들일 것이다. 그 부수적인 요소들 중에서도 나름 우선순위에 놓이는 것들을 생각해 보자. 물만 먹고살 수는 없으니 다양한 식재료들이 필요할 것이다. 맛도 맛이지만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 영양소라는 측면에서 물만으로 오래 살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건강한 삶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식재료 중에서도 우선 챙겨야 할 것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 몸에 필요한 3대 영양소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이니까 곡물 그리고 고기 정도가 최우선이 될 것이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텐데 달걀도 아마 수위권에 놓일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달걀이라는 것이 우리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적인 식재료 중에 수위에 놓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있어야 할 식재료는 아니라는 거다.     

 

 

 이 지점에서 달걀은 우리 삶의 영위라는 의미보다는 그저 보다 다양하게 맛있게 먹고 싶은 욕망의 대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달걀을 이런저런 방법으로 다양하게 요리해 먹는 것 자체가 욕망의 결과물이지 어떤 의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의미를 찾으려 애를 쓰고 있다. 나 역시 쥐뿔 개뿔 아무것도 없고, 특출 날 것도 없는 인간이기에 무던히도 의미를 찾으려고 애를 써 왔고, 쓰고 있다. 글쓰기를 시작할 때도 그랬다. 글쓰기를 하자라고 마음먹기 전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등을 엄청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글쓰기의 의미를 나름 찾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때는 분명 찾은 듯했다.     

 

 

 그 의미는 바로 ‘나를 찾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과 의미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글을 써 왔다. 글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일기들이 더 많긴 하지만 여하튼 써 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 벽에 부딪힌 느낌이다. 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으로써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삶의 의미라는 것을 찾는 과정이 그리 쉽진 않을 것이다. 시일도 꽤 걸릴 것이다. 그렇기에 난 아직 의미를 찾는 과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글을 쓰자고 마음을 먹은 지 이제 겨우 1년 정도니 뭐 대단한 의미 같은 것을 찾았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그 의미를 찾고자 매일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내가 지금 의미를 찾자고 글을 쓰는 건지, 그저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좋은 건지 슬슬 헷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나름의 이유가 있다. 글쓰기 연습을 하자고 매일 글쓰기에 도전한 지 3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매일 쓰고 있다. 그런데 점점 쓸 거리가 없다. 내 속에 있는 것들이 부족해서 메말라가서 그럴 것이다. 답답하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럼에도 글을 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3개월 정도 매일 글을 썼으면 습관화가 됐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냉정히 나를 돌아보면 딱히 습관화됐다고 할 수는 없다. 습관화를 위한 시간이 아직 더 필요한 걸 수도 있다. 그래서 매일 글을 쓰면서도 은근히 나 자신과 싸움을 한다. ‘귀찮은데 오늘 하루 넘기자. 아니야, 다짐한 대로 매일 쓰자.’ 이렇게 말이다. 다행히도 매일 쓰자는 쪽이 지금까지는 이겨 왔기에 매일 쓰고 있다.     

 

 

 그런데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뭘 쓰려고 해도 뭐가 없다. 이렇다 할 'input'이 없는데 계속 'output'만 해 왔으니 당연한 결과다. 인풋을 위해 책 좀 읽자고 늘 생각만 하다가 만다. 글쓰기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관점에서 전방위적인 위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이 정도로 몰리면 포기할 법도 한데, 이 주제를 바탕으로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이 순간, 나는 내가 과연 내 삶의 의미를 찾고자 글을 쓰기 시작한 그 처음의 다짐을 앞세워 글을 쓰고 있는 건지 그냥 쓰고 싶어 쓰는 건지 생각을 안 해 볼 수가 없다. 글을 쓰기 시작한 초기라면 당연히 의지 어쩌고저쩌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쓰고 싶을 뿐이다. 잡히지도 않는 의미보다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행위 자체가 더 의미 있을 듯하다. 더욱이 그냥 쓰는 것도 아니고 쓰고 싶어서 쓰는 거니 이보다 의미 있는 행위가 있을까 싶다.     

 

 

 글쓰기를 빗대서 이야기했지만 삶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소위 어느 정도의 성공을 이룬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저 정도면 충분히 명예를 드높인 삶이고, 저만한 부를 모았다면 남은 생 편하게 살면 될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물론 계속 열심히 살아가는 다양한 의미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 그런 의미를 좇는 걸까? 그 어떤 근거도 없지만 내가 볼 때는 그냥 그런 삶을 계속 살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최근에 본 하나의 기사를 통해 빈약해도 너무 빈약한 주장을 궁색하나마 뒷받침해보려 한다. 필리핀의 국민적 영웅인 복서, 파퀴아오가 있다. 올해 나이 마흔셋이라고 한다. 그리고 현재 필리핀 상원의원이다. 그는 2015년 ‘세기의 대결’인 메이웨더와의 경기에서 졌다. 그럼에도 12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파이트머니를 받았다. 경기에 져도 천문학적인 대전료를 받는 그가 오늘 또 복귀전을 치렀다고 한다. 돈과 명예를 모두 가진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받는 그가 마흔셋의 나이에 무슨 의미를 찾겠다고 복귀전을 치렀겠는가? 그냥 하고 싶어서 한 거지.     

 

 

 물론 인터뷰의 내용을 보면 여러 의미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그런 의미들 때문이었을까? 우리 인간은 생각보다 단순한데, 복잡하게 보이려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 그냥 하고 싶어서 한 건데, 여러 그럴듯한 의미를 복잡하게 설명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턱없이 부족한 주장의 근거를 더 찾아 쓰고 싶지만 떠오르는 예도 없고, 자세히 설명할 능력과 자신도 없어 마무리는 하는데, 가만히들 생각해 보라. 내가 의미 때문에 움직이는 건지, 하고 싶어서 움직이는 건지….     

 

 

 쓰다 보니 단순한 이야기를 더럽게 복잡하게 쓴 것 같다.     

 

 ‘그냥 하고 싶은 거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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