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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와 목적은 나를 알아가기 위함이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기억을 다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억이 나면 나는 대로 그렇지 않으면 그런대로 써 보려 한다. 다소 두서가 없을 수 있음을 미리 밝혀 두는 바다.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 소리다. 때는 바야흐로 일천 구백 칠십 구 년 시월 이십오 일…. 누가 요즘 이런 표현을 쓸지 모르겠다. 여하튼 그런 시기의 공포와 불안 그리고 기대를 안고 태어났다. 사실 그 시기에 태어나긴 했지만 내 기억 속엔 전혀 없는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분명히 내가 실제로 태어난 해에 나라에 어마 어마한 일대 사건이 발생했으나 나에겐 그저 역사 속의 한 페이지일 뿐이다. 물론 시대사적인 의미를 무시하고자 함은 아니다.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 더보기
‘나는 누구인가?’ 뜬금없는 소리 같을 것이다. 쓰고 있는 글의 제목이 ‘글’인데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나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던지는 게 맞다. 최소한 나에게만큼은…. 나의 존재에 대한 물음이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이유이면서 그 답을 찾아가는 게 목적이고 목표이기 때문이다. 아직 한참 젊은(‘어린’이라고 쓰고 싶지만 조금 과하다 싶어 참는다.) 나이지만 요즘 들어 부쩍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진다. 그렇다고 내가 어디에서 왔고 우주적인 관점에서 어떠한 존재인지 등의 근원적이며 철학적인 의미의 나를 찾고자 함은 아니다. 그저 단순하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 스스로 알고 싶을 뿐이다. 이런 의문을 가진 이유는 답답함에 있다. 세상을 어찌 살아가야 하는지, 그런 답답함이.. 더보기
그래도 장미는 핀다. 불혹不惑, 미혹되지 아니함, 나이 마흔을 일컫는 말이다. 내 나이 어느덧 마흔 하고도 넷이다. 나이 먹는 부분에 대한 특별한 거부감은 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럽고도 완숙한 한 살 한 살의 채워짐이 좋다. 다시 못 올 지나간 시간의 추억이 다소 아쉬울 뿐, 파여 가는 주름도 늘어 가는 흰머리도 한 편으론 대견스럽다. 잘 살아왔건 못 살아왔건 지금을 살고 있는 나를 증명해주는 시간의 훈장 같아 싫지 않다. 그런데 과연 마흔을 넘은 나이에 걸맞게 삶에서의 여러 유혹들에 미혹되지 아니한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나이를 먹을수록 미혹됨이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은 것 같다. 익히 알겠지만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인군자로 추앙받는 공자孔子가 한 이야기다. 성인군자에 한참 못 미치는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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