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에 쓴 글이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9개월 정도 된 시점이었다. 혼자 글을 쓰다 지역의 글쓰기 강의를 들으며 브런치 작가가 된 시점이기도 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브런치에 처음으로 올린 글이기도 하다. ‘그래도 장미는 핀다.’
3년 전이니까 기존의 한국 나이로 따지면 마흔셋의 나이였고 이번에 적용된 만 나이로 따지면 마흔 하나로 막 불혹인 마흔을 넘어 선 시점이었다. 이러나저러나 마흔은 넘었던 시점의 어느 하루의 이야기였다.
불안했다. 실체적이면서 당면한 문제는 없었지만 무언가 터질 거 같은 내재된 불안을 끌어안고 살고 있었다. 아니 분명히 실체적이면서 당면한 문제가 많았는데 외면하고 무시한 걸 수도 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딸아이를 키워야 하는 시점이었는데 하필이면 그때 일이 하기 싫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아내가 임신을 하고 한참 배가 불어 오르기 시작한 2020년 8월에 일이 하기 싫어졌다. 공교롭게도 그때 일을 하기 싫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표현을 쓰기엔 변화가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여하튼 일이 하기 싫어서 시작한 글쓰기를 아직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이상하다.
어쩌면 일이 하기 싫은 마음을 바탕에 두고 켜켜이 쌓인 불안에 의해 글을 더 열심히 쓴 것 같기도 하다. 이렇다 할 재능도 없는데 근 4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는 거 보면 당시의 그리고 지금도 여전한 불안은 글쓰기의 가장 큰 원동력이 맞는 거 같다.
판타지라고 해야 될까? 당장은 캄캄하고 막막하지만 혹시 모를 별천지가 내 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 공상, 기대, 바람 등등등. 뭐 대충 다 비슷한 의미의 단어들인데 반복해 쓴 이유는 그만큼 바라는 판타지가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게 1년, 2년... 시간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21년 5월에 본 장미는 변함없이 매년 5월이면 여기저기 빨강을 수놓았다. 최근에 약간의 식물을 키우고 있긴 하지만 애초에 식물, 꽃 뭐 이런 거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 간혹 필요에 의해 꽃다발을 살 때 보는 게 전부였던 꽃이라 그냥 그랬는데 21년 5월 불안한 마음속에 우연히 들어온 장미 덕에 매년 5월이면 남다르게 장미를 보게 됐다.
그럴 때면 나름 글의 소재로 삼아 매년 짧은 글을 써 볼까 했다. 그 의지가 3년 만에 드디어 실천으로 옮겨졌다. 3년이란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이는 어느덧 자라 일정 시간 동안 우리 부부의 품을 벗어나 유치원에 가게 됐고 아내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전 6년 간 살던 신혼집이면서 첫 아파트에서 이사를 하기도 했다.
변함이 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마음에 있는 불안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름없는 불안이 흙탕물 바닥의 진흙처럼 마음 저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물을 조금만 휘저으면 뿌옇게 될 진흙 같은 불안이 있다.
놀라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흘렀고 매년 5월이면 장미는 폈다. 이 불안이 언제 가실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시간은 내 삶은 흘러갈 것이고 그런 내 삶이 흘러감을 확인이라도 해 주듯이 장미는 필 것이다.
그럼 됐다. 힘들지만 불안하지만 삶은 계속되고 그런 삶을 응원이라도 하듯이 늘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맞이해 주는 장미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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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업체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그로로 새싹단 3기. 이야기하는 늑대.
@groro.every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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