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금닷돈 난 액세서리가 싫다. 그보다는 관심이 없다는 표현이 맞겠다. 아니 정확히는 액세서리 하는 걸 귀찮아한다. 반지, 목걸이, 귀걸이, 시계 …. 끼고 빼고 닦고. 생각만 해도 그냥 귀찮다. 거기에 더해 액세서리가 주는 인위적인 반짝거림보다는 상대적으로 무던한 사람이 자체적으로 내는 그런 빛이 좋다. 기억엔 없지만 내 첫 번째 액세서리는 아마도 백일반지일 것이다. 그 반지들은 어디 갔을까? 기회가 되면 40여 년 전 일이지만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다. 문득 궁금증이 인다. 왜 백일에 반지를 주는 것일까. 백일이 됐다 함은 태어나서 무탈하게 기본적인 면역체계가 잡혔다는 것을 뜻할 것이고 그런 시기를 맞이한다는 의미의 축하일 텐데 왜 반지를 선물할까? 손에 맞지도 않는 금반지를 의미도 모르는 아이가 끼고 있는 모습.. 더보기
완벽한 하루 완벽한 하루라 …. ‘완벽’은 ‘완전’과는 조금은 다른 의미일 것이다. 잘 모르겠지만 의미도 의미지만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사전적 의미가 다름이 설명이 돼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이성으로서 설명이고 감성으로서 설명은 국어사전만으론 충분치 못하다. 내 이해력이 딸리는 걸 수도 있고. 그래서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완벽한’과 ‘완전한’을 혼용해 쓰도록 하겠다. 여하튼 지금까지의 삶을 생각해보면 완벽한 혹은 완전한 날이 있었나 싶다. 그와 동시에 불완벽하거나 불완전한 날은 어떤 날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쓰고 보니 ‘불완벽’이란 단어가 이상하다. 완벽의 반대말이 뭐지 아…. 뭐지 모르겠다. 딱 하고 와닿는 단어가 없다. 고등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국어 공부 좀 더 해야겠다. .. 더보기
유년시절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와 목적은 나를 알아가기 위함이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기억을 다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억이 나면 나는 대로 그렇지 않으면 그런대로 써 보려 한다. 다소 두서가 없을 수 있음을 미리 밝혀 두는 바다.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 소리다. 때는 바야흐로 일천 구백 칠십 구 년 시월 이십오 일…. 누가 요즘 이런 표현을 쓸지 모르겠다. 여하튼 그런 시기의 공포와 불안 그리고 기대를 안고 태어났다. 사실 그 시기에 태어나긴 했지만 내 기억 속엔 전혀 없는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분명히 내가 실제로 태어난 해에 나라에 어마 어마한 일대 사건이 발생했으나 나에겐 그저 역사 속의 한 페이지일 뿐이다. 물론 시대사적인 의미를 무시하고자 함은 아니다.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 더보기
사람 몸은 이상하다. 세상 맛있고 깨끗한 게 들어가지만 세상 더럽고 냄새나는 게 나온다. 사람 몸은 이상하다. 얼굴에만 구멍이 일곱 개인데 물이 새어 나오질 않는다. 사람 몸은 이상하다. 사람 몸도 어떤 존재가 만든 건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건지 만들어진 물건일 텐데 이음새가 없다. 사람 몸은 이상하다. 짧고 짧은 인생이라지만 백 년 쓸 수 있는 물건이 그리 흔한가 싶다. 이쯤 되면 사람의 존재가치, 의미, 의도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왜 만든 거지? 누가 만든 거지? 조물주가 창조했나. 신이 빚었나. 지구의 물과 흙의 부스러기인가. 지구도 우주적인 관점에선 부스러기 수준이니 사람은 부스러기의 부스러기인가? 파고 들어갈수록 이상한 걸 넘어 덧없어진다. 덧없는 몸뚱어리 짊어지고 사는 내가 더 이상한 거 같다.. 더보기
행복이란 무서운 꿈을 꾸었다. 꿈은 깨고 잠시의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생각이 나지 않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달랐다. 물론 그마저도 내용이 완벽히 기억나는 건 아니었다. 뿌옇고 희미한 느낌보다는 어두운 느낌에 조금 더 가까운 날이었다. 낮밤의 구분이 가지도 않았다. 지인들인지, 모르는 사람들인지 적지 않은 사람들과 버스를 타고 어딘가를 가고 있었다. 말 그대로 목적지를 향해간 게 아니라 그냥 가고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일순간 버스도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 사라지고 도착했다. 그냥 도착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목적지를 향해간 게 아니니 그냥 도착한 게 맞다. 눈앞에 복도가 나타났다. 무심코 복도를 걸어가며 주변을 둘러보니 양 옆으로 문이 보였다. 그런가 보다 하고 앞으로 걸어가는데 문이 .. 더보기
‘나는 누구인가?’ 뜬금없는 소리 같을 것이다. 쓰고 있는 글의 제목이 ‘글’인데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나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던지는 게 맞다. 최소한 나에게만큼은…. 나의 존재에 대한 물음이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이유이면서 그 답을 찾아가는 게 목적이고 목표이기 때문이다. 아직 한참 젊은(‘어린’이라고 쓰고 싶지만 조금 과하다 싶어 참는다.) 나이지만 요즘 들어 부쩍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진다. 그렇다고 내가 어디에서 왔고 우주적인 관점에서 어떠한 존재인지 등의 근원적이며 철학적인 의미의 나를 찾고자 함은 아니다. 그저 단순하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 스스로 알고 싶을 뿐이다. 이런 의문을 가진 이유는 답답함에 있다. 세상을 어찌 살아가야 하는지, 그런 답답함이.. 더보기
아이 아이가 잔다. 세상이 잔다. 아이가 깬다. 엄마가 깬다. 아빠가 깬다. 세상이 깬다. 세상을 깨우는 아이는 신이다. 아이를 받드는 부모는 사제다. 매일 밤 기도를 드린다. 주무세요. 오늘도 기도를 올린다. 새벽 두 시엔 제발 주무세요. 더보기
그래도 장미는 핀다. 불혹不惑, 미혹되지 아니함, 나이 마흔을 일컫는 말이다. 내 나이 어느덧 마흔 하고도 넷이다. 나이 먹는 부분에 대한 특별한 거부감은 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럽고도 완숙한 한 살 한 살의 채워짐이 좋다. 다시 못 올 지나간 시간의 추억이 다소 아쉬울 뿐, 파여 가는 주름도 늘어 가는 흰머리도 한 편으론 대견스럽다. 잘 살아왔건 못 살아왔건 지금을 살고 있는 나를 증명해주는 시간의 훈장 같아 싫지 않다. 그런데 과연 마흔을 넘은 나이에 걸맞게 삶에서의 여러 유혹들에 미혹되지 아니한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나이를 먹을수록 미혹됨이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은 것 같다. 익히 알겠지만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인군자로 추앙받는 공자孔子가 한 이야기다. 성인군자에 한참 못 미치는 ..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