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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어쩌다 여행일기

과천 ~ 서울랜드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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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일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답답한 도로에 갇힌 차들을 바라보며 유유히 동문을 향해 걸어갔다. 동문에 도착해 티켓을 끊고 대망의 서울랜드 입장을 했다. 에버랜드보다는 조용한 입장이었다. 들어가 보니 놀이 공원 그 특유의 분위기 혹은 공기가 느껴졌다. 눈앞에 보이는 다양한 놀이기구들. 가만히 보니 찾아본 정보대로 아이들이 탈 만한 놀이기구들이 모여 있었다. 이래서 동문 주차장에 주차를 하라고 했구나 하면서 여기저기 둘러봤다. 그러면서 동시에 에버랜드에 조금 밀리는 서울랜드도 아이들이 타는 놀이기구들을 모아 놓은 곳이 있는데 에버랜드는 왜 없지? 하는 생각을 했다.

 

 

 아! 맞다. 에버랜드에도 ‘이솝빌리지’가 있지! 아이가 있기 때문에 나도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전에 에버랜드는 나에게 그저 판다나 보러 가는 큰 공원이었을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놀이기구 타는 걸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놀이기구엔 애초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에버랜드는 판다를 보고 사파리를 체험하는 게 다인 곳이었다. 그러니 이솝빌리지 같은 곳을 알 일이 없었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 직접적으로도 아니고 아내를 통해 이솝빌리지가 있다는 것만 알게 됐고 지난번에 갔을 때 공간을 확인만 했다. 그러니 그런 공간이 크게 인식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랜드에서 그와 같은 공간을 보니 생소했던 것 같다.

 

 

 다음엔 에버랜드에 가자마자 이솝빌리지를 먼저 가 봐야 할 것 같다. 과연 이솝빌리지의 퀄리티가 더 좋을지 기대를 하고 있다. ‘긴장하라 구, 에버랜드! 블랙이라면 좀 그렇고 시커먼 고객 하나 조만간 간다.’ 대충 놀이기구를 탐색하면서 시간이 시간인 만큼 우선 점심부터 먹어야 했다. 아이가 잘 버텨준 덕에 2시간을 내리 달린 것 까지는 좋았으나 그 덕에 점심시간은 다소 늦어졌다. 마침 바로 앞에 편의점이 있었고, 그 앞에서 점심 등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비치돼 있었다.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아 준비해 온 도시락을 펼쳤다.

 

 

 예쁜 딸아이가 있고 아내는 도시락을 준비하고 나는 짐을 챙기면서 운전을 하고, 놀이공원에 도착해 도시락을 펼치는 그 순간이 뭐랄까 TV에 나오는 전형적인 가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고 그냥 그 순간의 느낌이 따뜻했다. 유부초밥, 모닝 빵 샌드위치, 샤인 머스켓(보라색 포도는 씨를 발라 먹는 게 영 귀찮아 안 먹는다. 껍질은 물론이고 씨까지 포함해서 우적우적 씹어 먹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 식감이 별로여서 그렇게는 안 먹는다. 그래서 난 보라색 포도를 안 먹는다. 그런데 요즘에 아주 핫한 이름도 어려운 샤인 머스켓이란 청포도는 씨가 없어서 좋고 껍질도 보라색 포도보다 조금 얇은 듯 해 먹기가 좋다.) 등을 펼치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아내와 아이가 먹는 현미 물도 싸 왔다. 아이가 좋아하는 과일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데 최근에 가장 잘 먹는 과일은 샤인 머스켓이다. 기존 포도와 달리 나도 먹을 만해서 아이 먹는 길에 같이 얻어먹는 편이다. 나만 먹자면 다소 비싸서 사 먹지 않았을 것이다. 양가 할머니들이 잘 사주셔서 그걸로 충분했는데 워낙 잘 먹어서 이번엔 우리가 산 걸 먹이고 있는 중이다. 봄에는 그렇게 딸기를 먹더니 이 번엔 샤인 머스켓이다.

 

 

 점심을 얼추 다 먹었는데 싸온 점심이 나에겐 다소 부족했다. 주위를 둘러보다 보니 튀르키예 아이스크림을 의례히 까부는 튀르키예 사람이 팔고 있는 곳이 있었다. 그 옆에 보니 케밥도 같이 팔고 있었다. 바로 일어나 케밥을 사러 갔다. 옆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사려는 여중생을 튀르키예 직원이 신나게 놀리고 있었다. 주문한 케밥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케밥이 너무 작았다!!! 아내와 한 두어 번 나눠 먹으니 다 없어져 버렸다. 맛은 괜찮았는데 크기에 비해 가격이 사악했다. 최근의 물가 상승에 의해 그런 건지, 놀이공원 프리미엄이 붙은 건지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영 기분이 별로였다.

 

 

 점심을 다 먹고 놀이기구를 타러 가기로 했다. 오늘의 주목적은 아이에게 나름 놀이기구다운 놀이기구를 태워 주는 것이었다. 아! 아이에게 이 전에 놀이기구를 태워 준 적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청주에 있는 정말 유치하고 유치해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놀이기구였기 때문에 놀이기구가 주는 최소한의 익스트림한 맛도 못 느껴 봤을 그런 놀이기구였다. 그래서 이 번 서울랜드에서 본격적인 놀이기구를 태워 주고 싶었다.

 

 

 첫 번째 기구는 그 이름도 찬란한 ‘둥실, 비행선’이었다. 이렇게 보니 아이들이 탈 만한 놀이기구는 기본적인 구조는 다 회전목마라고 보면 될 것 같았다. 회전목마와 같이 밑에 커다란 판이 돌고 그 위에 탈것이 있어 타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다만 그 탈것이 고정되어 있느냐, 움직이느냐 혹은 중앙의 기둥에 묶여 돌면서 하늘을 나느냐 그 정도 차이였다. 둥실 비행선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늘을 다는 형태의 회전목마였다. 내가 아이를 안고 아내와 마주 보며 비행선 모양의 놀이기구 한 칸에 탔다.

 

 

 출발하면서 비행선이 슬슬 속도를 내면서 떠올랐다. 가운데 기둥에 묶여 약간의 원심력을 탑승자에게 느끼게 해 주면서 돌기 시작했다. 이건 정말 아이가 처음 느껴 보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원심력과 높이 그리고 속도. 아빠 차를 타면 더 빠른 속도로 달리지만 그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한 다섯 바퀴 정도를 돈 거 같은데 마지막 바퀴를 돌기 시작할 즈음 아이는 불안했는지 품 안에서 불안함을 내비치며 꾸물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성인들과 느끼는 바가 같은지 모르겠지만 원심력만큼은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었을 테니 그 생소함이 어색 혹은 두려웠을 것 같다.

 

 

 마침 마지막 바퀴는 금세 끝나 버렸고 아이는 울기 직전에 놀이기구에서 내렸다. 아내와 나는 동시에 세상에 없는 칭찬을 했다. 저렇게 높고 빨리 돌아가는 놀이기구도 드디어 탔다고, 잘했다고, 울지도 않고 잘 탔다고 무진장 추켜세워 줬다. 문제는 내 속이 별로였다. 난 고등 시절까지 심하게 멀미를 했던 몸이다. 멀미가 얼마나 심했냐면 할머니 집에 시내버스를 40여 분 정도 타고 갔는데 그 시간 동안 멀미가 심해 몇 번을 내리고 타고 게우고를 반복했다.

 

 

 어렸을 때 엄마는 시댁에 가는 그 어려움보다 멀미가 심한 아들을 챙기는 게 더 어려웠을 것이다. 먹으면 더 멀미를 할 것 같았던 액체 멀미약, 그리고 지금은 몸에 안 좋은 거라고 잘 안 쓰는 키미테를 달고 살았다. 대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레 멀미가 줄었고 운전을 시작하면서 아예 사라졌지만 원심력 등을 느끼면 내 속은 어릴 적 멀미할 때의 속으로 돌변한다. 이제 배 타는 것도 아무렇지 않은데 원심력은 도저히 못 견딜 느낌이다.

 

 

 두 돌도 안 된 아이를 엄마, 아빠가 안고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빠르면 얼마나 빠르게 돌았을까? 그럼에도 그 느낌은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지 내리기 전에 울기 직전이었던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해맑았다. 내 속은 내가 다지면 되니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이제 다음 코스다. 다음 코스는 ‘쥬라기 랜드’였다. 영화 ‘쥬라기 공원’과 비슷한 컨셉을 잡은 전시 공간이었다. 약간 고고학 느낌도 주려고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내용은 생각보다 부실했다.

 

 

 아~ 서울랜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요? 그러니까 에버랜드에 밀리는 거 아닙니까? 우리 같은 이용자들이야 제공자들인 당신들이 박 터지게 경쟁을 해야 되는 건데 한쪽이 너무 밀리면 이거 재미 없습니다하고 딱히 마음에도 없는 응원을 서울랜드에게 보내면서 대충 훑어보고 나왔다. 나오는 출구는 또 기가 막히게 기념품 가게로 연결시켜 놨다. 이런 건 또 드럽게 잘하지…. 나와서 몇 가지의 놀이기구를 더 둘러봤다. 내 눈엔 아이가 타기에 다 너무 빨라 보이거나 혹은 어지러울 것 같았다.

 

 

 그런데 아내는 ‘또봇 트레인’을 태우고 싶어 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롤러코스터다. 아이들이 탈 수 있을 정도의 순한 맛 롤러코스터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내 눈엔 여지없이 빨라 보였는데 아내는 괜찮아 보였나 보다. 내가 강력하게 안 된다고 아이 무섭다고 거부해서 다른 놀이기구들을 둘러봤다. 그때 회전목마와 거의 같은 놀이기구를 찾았다. 탈것이 말이 아닌 악기 모양이라는 것만 달랐다. 돌아가는 속도도 그렇고 탈것도 고정돼 있어서 괜찮을 것 같아 타기로 했다.

 

 

 줄을 서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줄은 꽤 긴 편이었지만 놀이기구 타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아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었다. 한 두어 번 만 더 기다리면 우리가 탈 수 있는 차례가 올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는 잠이 들어 버렸다. 그렇다. 안 그래도 낮잠 시간이 조금 지났는데 고속도로를 2시간이나 달려오는 동안에도 자질 않았고, 다소 늦은 점심을 먹은 이후에 아이 인생 처음으로 놀이기구를 하나 탄 상황이었다. 쥬라기 랜드 둘러본 건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아이는 이미 피곤할 상황이었다. 잠이 들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정말 잠이 든 게 맞나 확인을 하기 위해 잠시 기다려 봤지만 잠이 든 게 확실했다.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아이를 깨우면서 까지 놀이기구를 탈 필요는 없다. 줄에서 이탈해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줄을 역주행해서 빠져나왔다. 한 편에 세워 둔 유모차를 찾아와 아이를 눕히고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어 허허허허…. 마음 같이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아이와 다니다 보면 언제나 항상 세상은 의외성 투성이라는 걸 알 수 있게 된다.

 

 

 유모차에 눕히니 바로 잠에서 깨어나는 아이를 볼 수 있었다. 다시 안아 올렸다. 하지만 다시 줄을 서긴 싫었다. 아이를 안은 채로 여기저기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건 넓은 놀이터였다. 놀이공원에 놀이터?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정말 놀이터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큰 놀이터. 내려오는 곳이 투명한 통으로 되어 있는 미끄럼틀도 있었고, 높고 큰 구조물에 그물망을 대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는 아주 큰 정글짐 형태의 구조물도 있었다.

 

 

 저기 위에 올라가서 탐험하듯이 놀면 좋겠지만 아직 우리 아이에겐 무리였다. 조금 더 돌아보니 그런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아주 넓은 미끄럼틀이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미끄럼틀을 타고 있었고, 부모들은 그 앞에서 연신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핫스팟이었다. 아이가 혼자 탈 수는 없겠지만 내가 안고 탈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아이를 안고 바로 올라가 미끄럼틀 위에 올라섰다. 오~ 생각보다 높았다. 이거 속도가 조금 나겠는데 하는 약간의 걱정과 아이를 안고 앉아 내려왔다. 그런데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아서 안정적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밑에서 사진을 찍던 엄마도 타 보고 싶다고 해서 한 번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타기 위해 특별히 정해 놓은 놀이기구가 없었기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버스킹 하는 곳도 있었고, 푸드 트럭들이 죽 서 있는 먹자골목 비슷한 곳도 있었다. 사진을 찍기 좋은 조형물도 더러 있어 아이와 올라가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따 저녁을 뭘 먹을까 하는 마음으로 둘러봤다. 발걸음은 어느덧 정문 쪽을 향했고, 서울랜드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지구별까지 왔다. 그렇지! 이걸 봐야 서울랜드에 왔다고 할 수 있지.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아이 기저귀도 갈고 수유도 해야 해서 수유실을 찾아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 정도 쉬는 시간을 갖은 뒤에 다시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동문 쪽으로 이동했다. 아내는 또봇 트레인을 타지 못한 걸 못내 아쉬워했다. 결국 아내의 설득에 못 이겨 또봇 트레인을 타러 가기로 했다. 아이와 어른 구분 없이 놀이공원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기구는 롤러코스터임을 알려주듯 줄이 가장 길었다. 놀이공원에서 줄 서는 거야 지극히 평범한 일이고 그 대상이 롤러코스터이니 감안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는 줄 사이로 커다란 또봇 조형물도 있어서 사진 찍기도 좋고 아이들이 바라보기도 좋았다. 이번에도 아이들 놀이기구라 그런지 타는 시간이 짧아 줄은 상당히 빠르게 줄어들었는데! 사랑하는 우리 딸내미는 또 잠이 들어 버리신 것이었다. 아아~ 통제로다. 두 번의 줄 서기의 노력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두 번째 잠든 아이를 유모차에 옮겼을 때는 깨지 않았다는 점 정도다. 아내와 나는 아이가 깨면 놀이기구 하나 정도 더 타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이가 자는 동안 유모차를 끌면서 탈 만한 놀이기구가 뭐가 있을까 탐색을 시작했다. 탈만한 서너 가지 놀이기구를 발견했다. 그중엔 놀이공원의 가장 대표적인 놀이기구인 회전목마도 있었다. 어른들 입장에서는 참 따분한 놀이기구다. 연애를 할 때 분위기를 내기 위해 한 두 어 번 탈까 말까 한 놀이기구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연애를 할 때 안 타볼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보다 어렸을 때도 딱히 타진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드라마 등에서 타는 모습을 통해 연애할 때의 하나의 전형적인 모습 정도로 각인돼 있다고 보는 게 보다 정확할 것 같다.

 

 

 여하튼 다른 건 몰라도 아이가 타기에 부담스럽지도 않고 그래도 하나는 더 타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아이가 깨면 회전목마 타고 저녁을 먹든 집엘 가든 하자고 아내와 결정을 했다. 시간은 어느덧 저녁시간인 6시에 가까워졌다. 투둑! 뭐지? 하늘을 봤다. 물이 떨어지네? 하늘에서 물이 그냥 떨어 질리는 없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 오늘 일기예보 왜 이리 정확한 거야? 아까 출발하기 전에 가볍게 스윽하고 확인한 일기예보가 오늘따라 그 시간까지 맞춰 주는 정확함을 보여 줬다. 한 두어 방울 투둑 투둑 떨어지는 것 같더니 이내 빗방울이 굵어졌다.

 

 

 아내가 우선 식당에 가서 밥을 먼저 먹자고 했다. 비가 더 많이 오기 시작하면 놀이공원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식당으로 몰릴 것 같다는 아주 합리적인 견해를 냈다. 지극히 타당하여 바로 인근 식당을 찾아들어갔다. 원래 계획은 아까 푸드 트럭이 많이 모여 있던 약간은 먹자골목 같은 느낌의 거리에서 저녁 메뉴를 조금 더 고민해 보기로 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니 마음이 급해 우선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비가 오는지도 모르고 유모차에서 계속 자고 있었다.

 

 

 다양한 메뉴를 팔고 있는 식당이었는데 살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주 메뉴가 없고 이거 저거 파는 식당은 맛이 그냥 그런데…. 애초에 놀이공원 식당에서 아주 맛있는 걸 기대한 바는 아니지만 이렇게 급하게 찾아 들어오다 보니 그 아쉬움이 불길함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장 대중적인 메뉴인 돈가스, 짜장면, 떡볶이를 시켰다. 오래지 않아 메뉴는 나왔고 우리는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아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불길한 예감은 절대 틀리지 않는 법이다. 사실 맛이 그냥 그랬다.

 

 

 짜장면과 떡볶이는 분명히 그 메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맛을 내기는 했지만 그 뒤에 따라붙는 이런 맛은 도대체 왜 나는 거지? 하는 부분이 있었다. 뭐라고 설명하기도 힘든 맛이 따라붙게 만들기도 참 힘들 텐데 하는 궁금증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놀이공원 식당 자체적으로 뭘 만들지도 않을 것이고 죄다 만들어진 반 조리 식품을 끓이고 볶고 데치고 조립하는 것 밖에 안 될 텐데, 왜 이런 맛이 나지? 하는 심각한 의문을 품고 맛있게 먹었다.(아까워서 맛있게 먹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돈가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돈가스 맛을 보여 줬다는 점이다. 휴게소 표 혹은 김밥천국 표 돈가스 맛, 돈가스여 영원 하라!

 

 

 자리 잡은 식당은 회전목마 바로 앞 식당이었다. 밥을 먹고 비 그치는 거 봐서 바로 회전목마 타고 집에 가기 위한 목적으로 자리를 잡은 식당이었기에 사실 맛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짜장면과 떡볶이를 다 먹어갈 즈음 아이가 잠에서 깼다. 야외 자리에서 먹고 있었는데 깨어나는 아이를 보니 추울 것 같았다. 감기라도 걸릴까 무서워 잠에서 깬 아이 몸에 담요를 두르고 꼭 껴안았다. 그렇게 껴안은 채로 밥과 소스가 묻어 있지 않은 돈가스를 먹였다. 아이는 자다 깨서 컨디션이 괜찮았는지 밥을 잘 먹었다.

 

 

 담요로 감싸고 꼭 끌어안은 채로 몸을 계속 문질러 줬더니 추운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아프면 안 된다. 아이도 엄마, 아빠도 너무 고생이다. 아이가 밥을 다 먹어가는 대도 안타깝게 비는 그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열정이 대단한 아이들과 부모들은 우의를 입은 채로 신나게 놀이기구를 타고 있었다. 아이가 밥을 먹는 시간이 조금 걸리니까 그 시간을 비가 그치기를 바라면서 밥을 천천히 먹였음에도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시선을 교환했다. 이거 오늘 그냥 가야겠다. 제대로 된 놀이기구 하나밖에 못 탄 게 아쉽지만 비가 그치질 않으니 어쩔 수 없다는 걸 확인하는 눈빛 교환이었다. 그럼 이제 문제는 비가 오는데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서 어떻게 주차장까지 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동네 식당도 아니고 내가 후다닥 뛰어가서 주차된 차를 식당 앞으로 끌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산은 하나 있었지만 우산 하나만 가지고 비를 온전히 피할 순 없을 것 같았다. 사실 난 정말 비가 많이 오지 않는 이상 우산을 안 쓴다. 손에 뭘 드는 게 귀찮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그냥 비를 맞고 뛰는 편인데 아이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우산을 주면 되지만 아내도 본인만 쓰고 갈 수는 없는 엄마라는 존재였다. 가장 좋은 건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햇빛을 가리는 차양(?)을 치고 그 위에 우산을 씌우고 아내와 나는 비를 맞으며 달리면 됐다. 그런데 영 내키지가 않았다. 아이가 감기에 걸려 아프면 정말 안 되지만 아이의 엄마인 아내도 아프면 안 된다. 그래서 우의를 두 개 사기로 했다. 하나는 내가 입고 유모차를 끌고, 하나는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우의로 감싸기로 했다. 아내는 우산을 쓰고 따라오면 아주 괜찮은 해결방법이 될 것 같았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시간은 어~ 하면 흘러가는 거니까 여기서 지체하면 집까지 가는 시간만 해도 2시간인데 자칫 밤 11시 혹은 12시에 도착할 판이다. 아내와 아이를 두고 바로 튀어 나가 근처를 조금 헤매다 우의 두 개를 사 와 계획대로 조치를 하고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아이는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가 이상한 파란 비닐 옷을 입고 자기가 탄 유모차에 그 파란 비닐을 덮으니 마냥 신기해하며 재미있어했다. 그래, 뭐라도 좋으니 재밌으면 됐다 하는 생각으로 발 빠르게 주차장으로 향했다.

 

 

 신발은 비에 다 젖어 흥건해졌다. 평소에 즐겨 신는 캔버스 천으로 된 신발인데 비가 오는 날엔 아주 쥐약이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신발이 젖든 말든 주차장으로 향했다. 비가 오니 집으로 가기 위한 차들로 주차장이 분주했다. 아까 관리인 아저씨의 배려로 조금 빠져나오기 쉬운 곳에 주차를 했기에 오래지 않아 대로로 나올 수 있었다. 이제 집으로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내 역할의 대부분이 차에게 넘어가는 순간이다. 오던 길에 2시간 남짓을 잘 버텨준 아이인데 가는 길의 2시간은 어떨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저 오래 버텨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오던 때와 마찬가지로 집중해서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핸들만 잘 잡아주면 고마운 차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기민하게 움직여 줬다. 고마운 녀석! 네 덕에 먹고살고 여행도 다닌다. 아내는 피곤했는지 뒤에서 아이와 놀아 주다 잠들어 버렸다. 나도 졸리지만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미리 사둔 졸음을 방지하기 위한 건빵을 씹어 먹으면서 신나게 달렸다. 아이는 기분이 좋은지 연신 뭐라 뭐라 알 수 없는 말로 떠들어 댔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그대로 따라 하면서 달렸다.

 

 

 운전이라는 게 해 본 사람들은 알지만 사실 생각보다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아이에게 보조를 맞춰 주다 미안하지만 아내를 깨웠다. 아내는 깨어나자마자 숙련된 조교처럼 준비해 온 장난감을 아이에게 쥐어졌다. 다양한 노래와 간단한 한글 그리고 숫자가 버튼을 누르면 나오는 장난감이었다. 아이가 버튼을 누르고 나오는 소리를 아직은 완벽하지 않은 발음으로 따라 하면 난 ‘잘한다! 잘한다!’를 외치며 신나게 달렸다. 노래도 같이 부르고 특정한 의성어도 같이 따라 하면서 계속 차를 달렸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가지만 주변 지형이 슬슬 익숙해질 즈음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를 지나 충청권에 들어서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놀라운 건 거의 다 와 가는데 이제 근 30분 정도만 달리면 집인데 아이가 아직까지 컨디션이 괜찮은 것이었다. 오! 조금만 더 가 보자. 휴게소 들르지 말고 집에 후딱 가서 씻고 쉬자하고 아이가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계속 설득하면서 달렸다.(사실 21개월 정도 되는 아이는 웬만한 건 다 알아듣는다.) 드디어 도착했다. 놀랍게도 집에 오는 길에도 2시간 정도를 아이는 아무런 보챔 없이 아빠랑 잘 놀면서 왔다.

 

 

 얼마 전 아파서 병원에 오랜 기간 동안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아이가 부쩍 크는 게 느껴지곤 했는데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정말 피곤했는지 아까 일어나 장난감을 쥐어 주고 다시 잠들었다가 도착을 해서야 깨어났다. 아침부터 도시락을 싸고 했으니 피곤할 법도 했다. ‘Home Sweet Home!'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해도 집 만 한 곳이 없다고 했다. 아이를 안고, 짐을 챙겨 집의 문을 열고 신발장에서 신발을 벗고 거실에 들어서는 순간 세상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특히 발이 다 젖은 나는 더욱 그랬다.)

 

 

 이거 저거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나는 짐을 풀고 아내는 먼저 후다닥 샤워를 했다. 이후에 내가 아이를 샤워시키고, 샤워시킬 때의 포동포동한 아이의 엉덩이는 언제나 항상 큰 기쁨을 줬다. 아이를 다 씻기면 아내가 물기를 닦이고 옷을 입히고 머리를 말려 주면 나는 그제야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면서 내일은 어딜 가지 하고 고민했다. 힘들지만 다닐 수 있을 때, 갈 수 있을 때 최대한 가야 된다. 주말과 연휴는 삶이라는 거대한 책임에 의해 언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이라고 하는 괴물에게 제물처럼 빼앗길지 모르기에 허락된 순간은 최대한 내 것으로, 아니 우리 가족 것으로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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