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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어쩌다 여행일기

목천, 천안, 독립기념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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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9일

 

 

 주차장에서 고객쉼터 및 식당가가 있는 곳까지 걸어서 한 3분 정도 걸렸다. 그 정도 시간은 얼마든지 아무렇지 않게 아이를 안고 갈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안내도를 보고 식당가에서 그 유명한 겨레의 탑까지 걸어가니 5분 조금 넘는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여기까지도 괜찮았다! 그리고 허허벌판이라고 해야 되나? 특별히 비를 피할 곳이 없는 아주 커다란 광장을 지나 겨레의 집까지는 근 10분 정도가 소요된 것 같았다. 이 구간이 죽을 맛이었다.

 

 아이는 12kg이 넘는다. 마트에 가면 보통 눕혀 놓고 파는 종이로 된 포대에 담긴 쌀이 20kg짜리 다. 그거 반 보다 조금 더 나가는 무게를 한 팔로만 지탱하고 다른 한 손은 우산을 들고 가려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비라도 오지 않았으면 우선 우산이라도 안 썼을 것이고 그전에 아이가 걸었을 것이다. 중간에 힘들다고 하면 잠깐 안아주고 또 내려놓으면 되니 힘든 부분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설령 안아 올렸다 한들 비가 안 와서 두 팔이 놀고 있으니 이쪽과 저쪽을 번갈아 쓰면 안고 가는 것도 별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비가 왔다.

 

 

 헉헉거리며 드디어 겨레의 집에 도작했다. 계단은 또 왜 그리 많은지 그래도 다 왔다는 안도감에 조금 더 힘이 났는지 마저 올라가 비가 들이치지 않는 곳에 아이를 내려놓았다. 마침 겨레의 집 중앙의 진취적인 동상 앞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쉬면서 공연을 잠깐 보면서 화장실도 이용을 했다. 독립기념관 관람 동선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독립기념관의 볼거리는 실내와 실외로 구분되어 있는데 실내는 겨레의 집을 기점으로 한 바퀴 도는 형태로 되어 있다. 비가 와서 걱정이었는데 겨레의 집부터 시작해서 각 전시관이 비를 맞지 않고도 이동할 수 있게 연결돼 있었다.

 

 왼쪽부터 시작해서 시계방향으로 도는 형태로 전시관을 순서대로 돌았다. 1전시관에서 5전시관까지 우리 민족의 근원부터 시작해 독립기념관 취지에 맞게 일제 치하의 아픈 이야기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1전시관을 다 보고 2전시관을 가기에 앞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전시관 안에서 먹을 수는 없었기에 마땅한 곳을 찾았다. 여기저기 야외에 자리들이 은근히 있었는데 비를 피할 수는 있었지만 밥을 먹기엔 조금 추웠다. 힘들게 아이를 안고 올라오기 전에 겨레의 탑 이전에 식당가에서 밥을 먹을 수 있을 거 같았는데 거기까지 다시 아이를 안고 내려갈 생각을 하니 정말 앞이 깜깜했다.

 

 아내와 나만 있었다면 일단 더 돌아보고 이따 먹자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너무 배고프니 당장 먹자 해도 다시 식당가로 내려가는 게 별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있으니 적당히 넘어갈 수가 없었다. 부모로서 책임 중에 꽤 큰 책임이라 할 수 있는 건 아이를 제 때 제대로 먹이는 것이다. 너무 힘들었지만 이 꽉 깨물고 아이를 안아 올리고 다시 걸어 내려갔다. 보통은 아내와 보조를 맞춰 걷게 되는데 이때는 너무 힘들어서 내가 먼저 ‘바바박’ 걸어갔다.

 

 

 천천히 걸어가든 빨리 걸어가든 그 힘든 부분은 변함이 없지만 빨리 걸어가면 어찌 됐든 목적지에 다만 몇 분이라도 빨리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헉헉거리면서 걸어갔다. 빨리 걸어가니 목적지가 빠르게 다가와 좋았는데 우산을 가끔 고쳐 들기가 너무 힘들었다. 별 수 없이 아내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시간 같은 15분 정도를 걸어서 팔이 이제 그만 떨어질 거 같을 때 드디어 식당가에 도착했다.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기쁘기 그지없는 감정을 한 아름 담아 ‘다 왔다.’하고 외쳤다.

 

 

 면 종류를 주로 파는 식당이었는데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식당 메뉴를 주문하지 않고 싸온 도시락만 먹을 수도 있는 공간이었다. 날도 쌀쌀하니 따뜻한 면 하나 시켜서 도시락과 먹자 하고 아내와 이야기를 하고 우동과 돈가스를 시켰다.(아이와 돈가스가 주문이 가능한 식당에 가면 항상 돈가스를 시키는 것 같다.) 아이가 이제 어느 정도 커서 아이 의자에 잘 앉지 않으려 했다. 안정적인 등받이가 있는 의자가 있는 자리를 찾아 테이블을 최대한 아이 자리에 붙여 주는 방법을 통해 아이의 안전이 확보되는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먼저 먹기 시작했다.

 

 

 조금 뒤에 주문한 우동과 돈가스가 나와 따뜻하게 국물 먼저 먹으면서 마저 도시락을 먹었다. 날이 쌀쌀할 때 따뜻한 국물은 정말 가슴까지 따뜻하게 해 준다. 도시락을 거의 다 먹어 갔다. 도시락을 먹는 건 좋은데 다 먹어간다는 건 다시 아이를 안고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현실이 다가온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아무리 따뜻한 국물을 먹어 가슴까지 따뜻해져도 아이를 다시 안고 걸어 올라갈 힘까지 주진 못 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돌아서서 가기엔 너무 아까웠다.

 

 

 드디어 아내가 아까 이야기한 독립기념관 부지를 도는 ‘태극열차’를 써먹을 때가 된 것 같았다. 겨레의 탑부터 시작해 상행은 독립기념관 부지 전체를 돌아 겨레의 집에 도착을 하는 경로였고, 하행은 겨레의 집에서 겨레의 탑까지 바로 내려오는 경로였다. 어디를 돌든 안 돌든 중요한 건, 비가 오는 날 아이를 안고 걸어가지 않고 겨레의 집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비가 왔다 할지라도 아이가 없었다면 성향 상 타지 않았을 것이다.

 

 

 비용이 얼마 하지는 않았지만 가급적이면 몸으로 부대끼는 성향이라 걸을 수 있으면 걷고 뛸 수 있으면 뛰는 사람이었다. 아이는 정말 많은 걸 바꿔 주는 존재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면서 태극열차를 타기로 했다. 결과적으론 잘 탄 것 같다. 힘이 들지 않았다는 지극히 원초적인 경험에 더해 독립기념관의 넓은 부지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겨레의 집에 다시 도착하니 이번엔 동상 앞에서 ‘비눗방울 쇼’를 하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환호소리와 박수소리가 꽤 크게 났다. 우리도 홀린 듯이 자리를 잡았다. 자리라고 해 봐야 적당한 곳의 대리석 바닥에 쭈그리고 앉는 게 전부였다.

 

 

 

 쇼를 진행하는 아저씨가 꽤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작가 말고 또 하나의 꿈이 강의하는 건데 배울 점이 있어 보였다. ‘라이브로 저렇게 좌중을 휘어잡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잘한다.’하고 생각하면서 아이와 연신 박수를 치면서 쇼를 봤다. 기억에 의하면 이 번이 독립기념관 세 번째 방문 같은데 아까도 그렇고 이렇게 지속적으로 공연을 하는 건 처음 본 것 같다. 아픈 역사를 기념하기 위한 곳이기에 나름 예의가 필요하지만 또 한 편으론 그런 역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면서 앞으로 다시는 아픈 역사를 만들어가지 말자 하면서 그런 의지를 기쁜 마음으로 다지는 자리로 기념관을 방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의도인지 뭐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사람들이 찾아드는 곳에 볼거리가 많아진다는 건 긍정적이니 아픈 역사는 역사대로 기억하고 즐길 건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문화로 만들어 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예의 차리느라 아무도 오지 않는 기념관보다는 선을 넘지 않는 한에서 한 명이라도 더 오는 기념관이 되는 게 낫지 하면서 다시 1전시관으로 향했다. 1전시관은 아까 봤으니 비를 피해 가는 경로로 지나쳐 갔다. 이어서 차례대로 2전시관을 보고 3전시관을 보러 가는 와중에 간단한 식사와 간식을 먹을 수 있는 매점을 발견했다. 아~~~ 아까 2전시관까지 보고 밥을 먹는 결정을 할 걸…. 이곳을 봤다면 그렇게 힘들게 다시 입구 식당가까지 가지 않았을 텐데 하는 진하고도 진한 아쉬움을 다른 곳도 아닌 아픈 팔에 쟁이고 3전시관을 향해 갔다.

 

 

 가다 보니 중앙 실외 광장에 수유실이 있어 수유도 조금 하고 기저귀도 갈 겸해서 들렀다. 수유하면서 기저귀를 가는 시간은 잠시 평온하게 쉬는 시간이 된다. 아주 잠깐이지만 휴식을 갖고 다시 3전시관으로 향했다. 1전시관의 부제(?)가 겨레의 뿌리다.(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적지를 보유하고 있는 고인돌과 지금은 불타 없어진 황룡사 9층 목탑 모형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2전시관은 겨레의 시련이다. 3전시관은 겨레의 함성으로 2전시관에서 우리가 일제 치하에 접어들게 된 시련을 보여 줬고 3전시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보여 줬다.

 

 

 4전시관의 부제는 평화누리인데 자유와 정의 등에 입각해 독립운동의 참 뜻을 기리는 곳이었다. 5전시관의 부제는 나라 되찾기로 보다 적극적이고 직접적이었던 독립운동사를 소개해 줬다. 그리고 6전시관은 새로운 나라인데 임시정부의 활동과 광복 이후로 대한민국 정부로 이어지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이외에도 7전시관(체험존), 독립기념관 홍보관, 함께하는 독립운동 체험관, MR독립영상관 이 있었다.

 

 우린 다 보진 못하고 5전시관까지만 보고 나왔다. 더 보고 싶었지만 일단 힘들었다. 시간도 어느 정도 됐고 집에 돌아가 저녁을 먹을 시간 등도 고려해야 해서 아쉽지만(진짜 아쉬웠나? 힘들어서….) 돌아가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은 당연히 태극열차를 타고 내려갔다. 집에 돌아가는 순간까지 비는 계속 내렸다. 비가 와서 실내를 돌아볼 수 있는 독립기념관을 선택한 건데 그 넓은 부지를 아이를 안고 걸어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래  저래 좋은 경험이었다. 목천 하면 아직도 사회 초년 시절에 길을 잘못 들어온 기억이 난다. 어리바리하던 기억에 더해 사랑스러운 아이와 함께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추억도 쌓은 목천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곳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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