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3일 ~ 15일
지금은 주말에 쉬고 있지만 얼마 전까진 주말에도 일을 했다. 그런 나에게 여름의 1주일 휴가는 가장 긴 휴가 기간이다. 그렇기에 그 휴가만큼은 꽉 차고 뜨겁게 보내야 한다. 이번 휴가는 분명히 뜨겁게 보냈다. 보통은 이렇게 여름휴가가 끝나면 휴일은 있어도 특별히 휴가라고 할 만한 기간은 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번엔 광복절이 월요일이라 토요일부터 3일간 쉴 수 있었다. 뜨거웠던 1주일의 휴가였지만 마지막 서울에서의 시간이 아쉬웠는지 아내가 세운 2차 휴가 계획을 평소와는 다르게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목적지는 ‘마계 도시’ 인천이었다. 인천이 왜 마계 도시인지 정확히는 잘 모른다. 인터넷 등에서 지나치며 보는 글, 기사, 영상 등을 통해 그런 이미지가 각인된 게 아닌가 한다. 어린 시절에 ‘짱’이라는 만화책을 봤는데 그 만화책의 배경이 아마 인천의 ‘주안 역’이었을 거다. 소위 일진을 먹기 위한 학교 짱들의 치기 어린 주먹다짐이 소재인 그런 만화로 기억하고 있다. 만화 내용이 마계 도시라는 이미지에 한몫을 조금 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다 보니 군인 시절에 나이는 같은 선임이 있었는데 참 싸가지가 없었다. 그 선임도 인천 사람이었다. 뭐 이래 저래 안 좋은 이미지와 경험 등만 이야기했는데 인천에 악감정 같은 건 없다. 사람들이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에 적당히 숟가락 하나 정도 올릴 뿐이다. 그러니 혹여 인천 분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그럼에도 영 기분이 별로라면 난 드럽게 재미없는 청주에 살고 있으니 우리 청주를 욕해도 뭐라 하지 않겠다. 모든 청주 시민을 대표해 이야기하는 건 아니니 그 부분은 또 다른 청주 시민 분들께 죄송할 따름이다.
아내의 계획은 이랬다. 송도에 숙소를 잡고 인천 여기저기를 돌자는 것이었다. 여행 계획은 늘 아내가 짰기 때문에 잘 모시고 다니기만 하면 된다. 인천은 공항을 제외하고는 가 본 적이 없기에 더더욱 아내에게 계획을 일임했다. 1차 목표는 ‘차이나타운’이었다. 별스러울 거 있겠나 싶었지만 짜장면은 확실하게 먹을 수 있으니 괜찮겠다 싶었다. 그리고 월병과 공갈빵도 좋아하니까 최소한 괜히 왔나 하는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짜장면이나 월병 그리고 공갈빵이 구하기 어려운 먹거리는 아니지만 또 특정 장소에서 먹는 맛은 기분이라는 측면에서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차이나타운을 시작으로 인천의 다양한 곳을 갈 건데 ‘인천투어패스’를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인천투어패스란 쉽게 말해 인천의 주요 명소를 묶어 패스 권 한 장으로 이용할 수 있는 관광 상품이다. 한 10곳 정도 되는 명소를 2만 원 정도 하는 패스 권 한 장만으로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가성비가 상당히 좋은 상품이었다. 평일과 주말에 따라 패스 권이 적용되는 곳이 있고 아닌 곳이 있어 확인이 필요했고 유아 등과 함께 한다면 약간의 추가금액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금액이 크지 않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디든 처음 장소에서 패스 권을 이용하는 순간부터 48시간 안에 나머지 장소를 이용할 수 있었고 한 장소를 이용하고 1시간 이내에는 다른 장소를 이용할 수 없는 최소한의 규제(?) 정도만 지켜주면 상당히 좋은 관광 상품이었다. 인천 사람들이야 뻔한 곳만 묶어 놨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천을 처음 가 보는 사람들에겐 큰 고민 없이 인천 전역을 돌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인 것 같았다.
이 번엔 숙소를 옮기지 않고 송도에 잡아 놓고 2박 3일을 보내기로 했다. 청주 촌놈이 송도 국제도시도 가 보고 많이 큰 것 같다. 인천투어패스가 있어 사실 계획이라기 보단 갈 수 있는 곳을 최대한 많이 가기 위해 동선만 잘 짜면 되는 그런 여행이었다. 우선 첫 번째 목적지인 차이나타운으로 출발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인천에 가까워질수록 날이 어둑어둑해지더니 기어이 비가 내리고 말았다. 더운 여름휴가에 비가 내리는 것도 나름 괜찮긴 하다. 내리는 비로 그나마 조금 덜 덥기 때문이다. 나다니기 불편한 부분만 감수한다면 비 오는 것도 괜찮다. 일할 때 오는 비가 정말 짜증 나는 비고 그 외에 오는 비는 어느 정도 참아줄 만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차이나타운에 거의 도착할 무렵부터 비는 그치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놀아보라는 하늘의 계시 같았다.
내리던 비가 해결되니 이제 교통체증이 시작됐다. 주말에 관광지다 보니 차가 막히는 건 사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니까, 그런 상황을 너무 잘 아니까 짜증 나는 상황이 예상을 벗어나지 않으니까 더 짜증 나는 것 같다. 꾸물꾸물 가는 건지 기어가는 건지 모를 속도록 차이나타운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들어갔다. 주차장은 차이나타운 입구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 지루한 행렬만 이겨내면 주차를 하고 바로 차이나타운으로 걸어갈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로 답답함과 짜증을 참아 냈다.
좁아터진 동네에 사람이 몰리니 주차장 올라가는 길도 참 뻑뻑했다. 뻑뻑함도 지나 결국 주차를 했다. 이제 드디어 짜장면을 먹으러 갈 시간이다. 그 흔하디 흔한 짜장면을 먹으로 내가 여기까지 왔나 하는 자괴감이 일순 들었지만 차이나타운의 짜장면이니 뭐가 달라도 조금은 다르겠지 하는 기대로 자괴감을 설렘으로 돌렸다. 예전에도 어느 정도 관광지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갔겠지만 요즘은 더 하다. 인터넷을 통해 예전에 비하면 과할 정도로 많은 정보를 확인하고 관광지, 음식점 등을 찾아간다.
내가 아이를 안고 엄마는 도보 내비게이션을 켜고 이리저리 가고자 한 식당으로 향했다. 오르막길을 올랐다. 아이를 한 손에 안고 여기저기를 보여주면서 올랐다. 아이에게 많은 걸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한 손으로만 안고 방향을 정면을 향하게 하고 오르다 보니 힘이 꽤 들었다. 그 와중에 길을 잘못 들어 힘들게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갔다. 아이고! 우리가 가고자 했던 식당은 주차장 바로 옆에 있던 식당이었다. 유명한 식당답게 대기 줄이 꽤 길게 서 있었다. 아내가 부랴부랴 달려가 대기 번호를 받으려 했다. 웬 걸 그렇게 늦지 않은 점심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뒤에 있을 브레이크 타임을 고려해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아~ 아쉬워라.
어쩔 수가 없다. 별 수 없이 다른 식당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맛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 맛 집에 가면 늘 언제나 항상 그냥 그랬잖아.’ 스스로를 애써 달래며 빠르게 다른 식당을 찾았다. 가고자 했던 식당 근처의 다른 식당에 들어갔다. 만석은 아니지만 한 두 테이블 정도만 비어 있었다. 이 식당도 괜찮겠구나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드디어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켰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소위 ‘소울푸드’는 은근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것들이 많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 치킨, 돈가스 등등 기본적으로 우리 음식이 아니었던 것들이다. 한국 사람들은 다른 문화를 들여와 한국화 시키는 능력이 탁월한 민족인 것 같다. 오죽하면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의 약자인 ‘KFC’를 요즘엔 코리아 프라이드치킨으로 많이 착각을 한다고 하니 말 다했다. 시작이 어디든 우리의 마음과 몸을 채워 주는 맛있고 고마운 음식들이다.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짜장면과 탕수육이 나왔다. 짜장면의 첫맛을 음미했다. 미식가는 아니지만 맛을 가릴 줄은 안다. 아주 약간 독특한 맛이 났다. 여행 이후에 시간이 한 참 흘러 글을 쓰고 있어 기존에 먹어 봤던 짜장면과 어떤 부분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는지 설명하기엔 내 기억력의 최대치가 짧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분명 조금은 달랐다. ‘그래, 이만하면 됐다.’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 먹어 봤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는 될 것 같았다. 탕수육은 별 다른 건 없었는데 고기가 조금 실했던 것 같다. 원래 가려고 했던 식당을 가지 못한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점심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다음 목적지는 차이나타운과 붙어 있는 송월 동화마을에 있는 트릭아트스토리였다. 평면에 그린 그림인데 일정한 위치에 서서 사진을 찍으면 입체감이 살아나는 그런 그림이 있는 미술관 개념의 관광지였다. 그림 특성상 사진을 마구 찍을 수 있는 곳이었다. 아이가 없었다면 가지 않았을 다소 시시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있으니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그려진 곳에 아이를 세워 두고 그 앞에서 좀 까불어 주는 맛이 필요하다. 아이를 기분 좋게 혹은 아이의 웃음을 듣기 위해 아이 앞에서 까부는 엄마, 아빠는 모두가 연예인이다. 2층까지 있었던 것 같은데 꽤 다양한 그림들이 있었다. 충분히 보고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되나? 저 자리가 더 잘 나오나 하면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볼 만큼 보고 난 후에 밖으로 나와 동화마을을 거닐며 다시 차이나타운으로 접어들었다. 동화마을은 개인적으로 봤을 때 전국 곳곳에 있는 벽화 마을과 느낌이 비슷했다. 관심 갖고 여기저기 볼 만한 곳은 아니고 그냥 지나치면서 ‘저기 벽에 그림 봐라.’ 뭐 이 정도 이야기하면서 지나칠 만한 곳이었다. 동화마을을 지나 차이나타운의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제 숙소를 향해 갈 시간이다. 차이나타운을 지나쳐 가며 다시 한번 아쉬운 마음에 여기저기 둘러보고 월병과 공갈빵을 하나씩 샀다.
숙소가 있는 송도까지는 20~30분 정도가 걸렸다. 송도에 도착해 숙소가 가까워지자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됐다. 아내와 단 둘이 여행하던 시절엔 밥때를 정확하게 지키지는 않았다. 여행을 하다 시간이 맞으면 제 때에 밥을 먹었고 그렇지 않으면 적당히 빨리 먹거나 조금 늦게 먹고 그랬다. 물론 아내는 나보다 상대적으로 밥때를 잘 지켜 가며 밥을 먹는 편이긴 하다. 그에 반해 난 그냥 적당한 때에 먹는 편이다. 귀찮으면 한 두 끼 건너뛰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가 있다 보니 아이를 위해서 밥때를 정확하게 지키는 편이 됐다. 둘이 여행할 땐 뭘 보다가 여차하면 조금 늦게 먹어도 됐는데 이제 막 태어나 자라나는 아이에게 그럴 수는 없었다.
원래 계획은 숙소에 짐을 풀고 다시 나와서 수상택시를 타려 했다. 이동을 하다 보니 저녁때가 돼 저녁거리를 사서 숙소에 가 우선 밥을 먹기로 했다. 마침 가는 길에 대형마트가 보여 방향을 틀어 마트에 갔다. 신선식품 코너에서 아내는 초밥을 고르고 난 소시지나 구워 먹자 해서 가성비 좋은 소시지를 샀다. 아이 밥은 준비해 온 것이 있었다. 살 걸 얼추 다 사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사온 저녁거리를 풀고 아이 밥을 데우면서 저녁 먹을 준비를 했다. 원래 계획인 수상택시는 우선 저녁을 먹고 결정하기로 했다.
저녁을 다 먹고 나니 수상택시를 타기엔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계획을 수정해 수상택시는 나중에 타 보기로 하고 숙소 근처에 인천투어패스를 이용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카페에 가기로 했다. 카페에 도착하니 옆에 오리 배를 탈 수 있는 작은 천(?)도 있었다. 카페에 앉아 야경도 보고 오리 배 타는 사람들도 구경할 수 있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은 투어패스를 통해 무료로 받고 음료 하나를 더 시켜 마시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동화마을의 트릭아트스토리도 투어패스로 이용했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도 투어패스로 받았다. 여행 첫날인데 이 정도만으로도 어느 정도 투어패스는 본전을 찾은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가 잘 준비를 했다. 여행을 오면 가장 고역이 아이 목욕시키는 부분이다. 육아는 ‘템빨’이라고 대단한 아이템을 쓰는 건 아니지만 나름 아이 목욕을 위한 아이템이 집에는 있다. 물론 여행을 다닐 때도 들고 다니면 되지만 여행은 자고로 짐을 줄이는 게 나에게 있어 원칙이다. 그런 관점에서 아이 목욕을 위한 아이템은 필수 아이템이 아니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아이 목욕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시킨다. 사실 기상천외란 단어를 쓰기엔 단순한 방법이다. 그저 내 몸이 다 젖을 각오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 과정이 또 나쁘지 않다. 아이랑 정말 가까이에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에 다소 번거롭고 힘들기도 하지만 즐거운 시간이다. 후루룩 뚝딱 목욕을 시키고 여행지에서의 특권이랄 수 있는 맥주를 마시면서 TV를 조금 보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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