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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어쩌다 여행일기

불타는 에버랜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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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8일

 

 

# 1부에서 이어집니다.

 

 일단 왔으니 우선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다 아이가 힘들어하면 빠져나오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기다렸다. 정말 고맙게도 아무 일 없이 기다렸다. 긴 시간 동안 아이는 한 번의 투정도 없이 엄마, 아빠 품에 번갈아 안겨 가며 때로는 바닥에 서서 잘 기다려 줬다. 우리가 사파리 차를 탈 순서가 거의 다 됐을 때 잠들려 한 것을 제외한다면 정말 아무 일 없이 잘 기다려 줬다. 너무 기특했고 너무 고마웠다.

 

 

 마지막에 이제 우리 순서가 돼서 차를 타기만 하면 되는 그 시점에 아이가 잠들려 해서 ‘안 돼! 안 돼! 잠들면 안 돼! 어흥 사자 봐야지’ 하고 깨우니 앞에 커플이 웃었던 일을 제외하면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 그렇게 근 1시간 30분을 기다려 사자와 호랑이 그리고 곰을 봤다. 본 시간은 너무너무 아쉽게도 10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원래 계획은 육식동물 사파리에 이어 초식동물 사파리까지 보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도 시간이지만 다시 한번 이 긴 시간을 아이가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어서 요즘 가장 핫한 아마존 익스프레스까지 타는 게 계획이었지만 최근의 인기를 반영하듯 사파리보다 줄이 더 길어 포기하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예전에 아내와 연애할 때 에버랜드에 놀러 와 마지막 퍼레이드까지 보면서 먹었던 치킨이 상당히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그런 느낌으로 먹고 싶었는데 그때 치킨을 먹었던 식당을 찾지도 못하겠고 마지막 퍼레이드 보면서 먹기 위해 그 시간까지 기다릴 수도 없었다. 아이는 제시간에 밥을 먹어야 했다.

 

 

 여기저기 식당을 찾다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쌀밥이 나오는 곳을 찾아들어갔다. 마침 마감 직전이라 급하게 메뉴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한식이었는데 김치와 돼지고기가 들어간 된장찌개였던 것 같다. 에버랜드에서 된장찌개라니. 휴가 4일째인데 가장 한식다운 한식을 다른 곳도 아닌 에버랜드에서 먹게 됐다. 그리고 그 선택은 상당히 탁월한 선택이었다. 맛있었다. 함께 주문한 돈가스도 나름 괜찮았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이제 마지막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퍼레이드가 시작되는 광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니 저 멀리 광장이 있는 곳에서 물이 뿌려지고 있었다. 날이 더워 기온을 조금 낮추기 위해 물을 뿌리는 줄 알았다. 웬 걸 광장에 도착해 보니 광장 무대에서 DJ 한 명이 상당히 시끄럽게 디제잉을 하고 있었고, 그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때 아닌 우의를 입고 미친 듯이 뛰고 있는 것이었다.

 

 

 소위 ‘흠뻑쑈’라는 걸 하는 것 같았다. 강렬한 비트에 신나는 음악을 쾅쾅 틀어대며 소방차가 불을 끄듯이 관중을 향해 물을 뿜어댔다. 그 앞에서 관중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지나다니는 길에 이 땡볕에 왜 우의를 팔고 있지 했는데 이 이벤트 때문이었던 것이다. 나름 멀찍이 서 있었는데 물이 우리에게까지 뿌려졌다. 아내는 놀라 유모차를 끌고 도망갔고 나는 그들과 함께 할 정도의 열정까지는 없었지만 이렇게도 노는구나 하는 신기한 마음에 영상으로 담기 위해 광장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래, 더운 여름인데 옷 좀 젖으면 어때! 금방 마를 거야, 안 마르면 또 어떻고. 재밌게들 산다.’ 저 열정이 부러웠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뭐 그렇다고 함께 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열정적으로 신나 하는 사람들을 거리를 두고 구경하는 딱 그 정도가 그 순간 내 열정의 끝이었다. 여러 구경거리 중에 물 구경과 불구경 그리고 사람 구경이 가장 재미있다고 하는데 그중에 두 가지 구경거리가 함께 있었으니 꽤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조금 더 보고 싶었지만 우리는 또 나름대로 계획한 부분이 있기에 사람들의 열정을 뒤로하고 자리를 옮겼다. 지금 당장은 퍼레이드를 시작할 시간도 아니고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광장에선 저리들 미쳐 날뛰고 있으니 기다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솝빌리지에 가기로 했다. 아이가 있으니 아주 적절한 선택이었다. 꽤 걸어가야 해서 에버랜드에선 이동수단이면서 놀이기구이기도 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기다리는 줄은 다른 놀이기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아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기다리는 와중에 아이가 잠들어 어찌할 수가 없어 줄에서 이탈해 아쉽고 힘들지만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아이가 탄 유모차를 말 그대로 정말 끌면서 밀면서 올라갔다. 이솝빌리지에 거의 도착해 약간의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우리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 둘을 하나는 한 손으로 안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다른 아이가 탄 유모차를 끌고 올라오는 다른 아빠를 봤다. 헐…. 한 녀석도 이리 힘든데 아이고, 아부지!!!

 

 

 지나치는데 안겨 있는 아이가 뭘 부탁했는지 아빠의 애원이 들렸다. ‘아빠, 힘들어….’ 속으로 그 아이에게 대답했다. ‘그래, 지금 너희 아빠 너무 힘들 거야. 조금만 참아 줘.’ 요즘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비슷한 또래의 부모를 보면 상당한 동질감, 동지애 등이 느껴진다. 군대에 가 있던 시절에 다른 군인을 봐도 이 정도의 감정은 없었는데 아이를 키우는 게 역시 보통은 아닌 것 같다. ‘나라님들, 제발 지원 좀 확실하게 많이 좀 해 주세요. 애국하려고 애를 낳은 건 아닙니다만 결과적으로 인구절벽으로 향해가는 이 시점에 애국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이솝빌리지에 들어섰지만 잠들었던 아이는 깨지 않았고 우리는 앉아 조금 쉬면서 내일 금요일에 무엇을 할지 숙소는 어딜 잡을지 등을 상의하고 찾아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아이가 깼고 건물 사이의 하늘에 꾸며진 색색 우산과 분수 정도를 보여주고 폐장시간이 다 돼 돌아 나왔다.

 

 

 다시 한번 셔틀버스를 타고 언제나 항상 듬직하게 기다려주는 차를 찾아 엄마, 아이를 태우고 유모차도 접어 싣고 편하게 다니기 위해 신었던 슬리퍼도 슬립온으로 갈아 신었다. 피곤한 몸과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곤한 눈을 치켜뜨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번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새롭게 한 경험은 휴게소와 에버랜드에 있는 수유실을 이용한 것이었다. 아이가 없었다면 절대 경험해 보지 못했을 일이다. 그리고 아이가 없던 시절에도 저런 불특정 한 다수가 사용하는 공간에서 내 아이를 돌보고 싶을까 싶었는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깔끔하게 유지 관리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휴가기간 후반부에 불타는 휴가의 불쏘시개가 된 에버랜드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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